기타 침례로 그리스도를 옷 입음--- 1888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대표자들에게 배부된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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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로 그리스도를 옷 입음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를 옷입었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롬 6:3).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함께 죽지 않으면 안된다. 침례는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된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갈 2:20 참조). 그리스도를 옷입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우리는 완전히 그와같은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개심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들 말하곤 한다. “그는 변화되었으므로 그를 알아보지 못할 거야 왜냐하면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야” 아니다. 결코 그렇지가 않다. 하나님이 그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으므로 그리스도가 가진 모든 것에 권리를 가지며 그리스도가 앉아 계시는 “하늘”에 갈 권리를 가진다. 그는 죄의 감옥으로부터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으로 올리워진다. 이것은 물론 침례가 하나의 실제이며 단순히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침례를 받는 것은 단순히 물 속에 잠기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그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침례가 우리를 구원함
“침례”라는 말은 헬라어에서는 “잠그다, 담그다, 쳐넣다”라는 단 하나의 의미 밖에는 없다. 대장장이가 쇠를 식히기 위하여 물에 잠근다. 주부가 그릇을 씻기 위하여 물에 담근다. 누구나 손을 씻기 위하여 물에 넣는다. 그렇다. 모든 사람이 씻기 위하여 침례용 물통 곧 목욕탕에 자주 가서 몸을 잠근다. 그곳은 사람들이 들어가서 물 속에 완전히 몸을 잠그는 곳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 곧 우리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을 때에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그의 생명 안에서 삼켜지고 보이지 않게 된다. 그 이후로는 그리스도만이 보이게 될 것이므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왜냐하면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기” 때문이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한다(벧전 3:21 참조). 왜냐하면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것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므로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합하여 받는 침례는 단지 형식이 아니고 사실이며 우리를 구원한다.
이 침례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선한 양심이 없다면 침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침례를 받을 사람은 양심을 가질만큼 충분한 연령에 차 있어야 한다. 죄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는 용서도 역시 깨달아야 한다. 세상에 나타나신 생명을 알아야 하고 새로운 의의 생명을 위하여 죄의 옛 생애를 즐거이 버려야 한다.
침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벧전 3:21). 외적인 육체의 씻음이 아니고 마음과 양심의 씻음이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려 있으며(슥 13:1 참조) 이 샘은 그리스도의 피이며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이 생명은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옆구리로부터 흘러나오는 것과 같이 그 가운데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있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온다(계 5:6 참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요 19:34) 자신을 하나님에게 드렸을 때에 그의 옆구리로부터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 5:8). 이 모든 것은 역시 영과 생명이신 말씀과 하나가 된다(요 6:63 참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엡 5:25, 26)기 위해서였다. 문자 그대로 말씀 속에 한 목욕이다. 물속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장사 지낸바 되었으므로 양심적인 신자란 생명 속 곧 모든 죄로부터 깨끗이 씻은 그리스도의 피를 받아들이고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그는 사라져 보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만이 그의 죽을 육체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한 자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차별이 없느니라.” 이것이 복음의 요지이다. 누구나 다같은 죄인들이다. 그러므로 모두 다 같은 방법으로 구원을 받는다. 민족에 근거하며 차별을 두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어떤 다른 점이 있다고 주장하려고 하는 자들은 마찬가지로 성을 근거로 하여 여자는 남자와같은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든지 또는 종은 그의 주인과 같은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할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 오직 한 길밖에 없다. 온 인류는 어떤 인종과 상태하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리고 그리스도는 한분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자니라.” 오직 한 자손밖에 없으며 그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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