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 - "네가 낫고자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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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장에 등장하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와 예수님의
만남은 성경에서 가장 깊은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1. "네가 낫고자 하느냐?" (행동과 마음을 깨우시는 질문)
예수님은 그 병자가 아주 오랜 기간(38년) 동안 고통받아 온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신 이
유가 있습니다.
- 무력감과 절망의 치유: 38년이라는 세월은 기대를 포기하고 절망이
- 일상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얼
- 어붙어 있던 소망과 변화에 대한 열망을 다시 깨우기 위해 이 질문을
- 던지셨습니다.
- 진정한 인격적 만남: 단순히 병만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사
- 와 마음을 먼저 존중하시고 인격적으로 다가가시는 예수님의 섬세한
- 사랑을 보여줍니다.
2. 병자의 대답과 우리들의 모습
예수님의 질문에 병자는 "네, 낫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한탄합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
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한복음 5:7)
그는 여전히 '물이 먼저 움직여야 하고, 누군가 나를 도와줘야만 한다'는 세상적인
조건과 한계에 갇혀 있었습니다. 바로 앞에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구원자(예수님)
가 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능력함과 주변 환경을 원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종종 우리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3.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조건 없는 사랑과 능력)
예수님은 그의 믿음이 완벽해서, 혹은 그가 올바른 대답을 해서 고쳐주신 것이 아닙
니다. 조건 없는 긍휼과 사랑으로 그에게 즉각적인 명령을 내리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요한복음 5:8-9)
- 과거와의 결별: '네 자리'는 38년 동안 그를 묶어두었던 절망, 질병, 그리고 무력
- 감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 자리에 누워 지배당하지 말고, 오히려 그 자
- 리를 손에 들고 걸어가는 승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이 말씀은 오늘날 삶의 무게나 영적인 무력감에 지쳐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
옵니다.
- 예수님은 우리의 오랜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 38년 된 영적·육적 고통을 예수님은 이미 보고 계시며, 먼저 다가와 주십니다.
- 환경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며
- 베데스다 연못만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내 앞에 서 계신 주님의 음성에 귀를
-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부드러운 사랑의 음성으로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음성에 .세상의 한계를 내려놓고, "주님, 저를 고쳐주시고 일으켜 주옵소서"라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은혜가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 사랑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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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망 21장 "네가 낫고자 하느냐?" 중에서 발췌
구주께서는 한 사람의 가장 처참한 형편을 보았다. 그는 38년간을 속절
없는 앉은뱅이로 지내온 사람이었다. 그의 질병은 대체로 그 자신의 죄의
결과였으며,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으로 간주되었다.그 병자는 자리에
누워서 때때로 그 못을 바라보려고 머리를 들곤 하였다.
바로 그 때에 한 부드럽고 연민 가득한 얼굴이 그를 굽어보며 말하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는 말에 그의 주의가 끌렸다. 그의 마음속에는
희망이 솟아났다.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는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느꼈다.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환자가 당신을 믿는 믿음을 활용하도록 요구하지 않으
신다. 그는 단순히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만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사람의 믿음은 그 말씀을 굳게 붙잡는다.
모든 신경과 근육이 새로운 생명으로 전율하고, 절던 그의 다리는 건강
하게 움직인다. 그가 의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자
기의 뜻을 정하자 그의 모든 근육이 그의 의지에 응답한다. 자기의 다리
로 일어서면서 그는 자기가 활동적인 사람이 되어 있음을 느낀다.
우리도 같은 믿음을 통하여 영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단절되어왔다. 우리의 영혼은 마비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그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고 오셨다. 그는 율법의
위엄성을 감소시키지 않으시고 오히려 높이실 것이었다.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사 42:21)
라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축복은 커녕 저주가 되게 만든 이 무거운 짐이 되는
요구 사항들로부터 안식일을 자유롭게 하시려 오셨다. 예수께서는 이런
이유로 베데스다에서 치유의 일을 행하시는 날로 안식일을 선택하셨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너무나 왜곡해서 그 율법을 속박하는 멍에로 만들었다.
그들의 무의미한 법칙들은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특별
히 안식일은 갖은 형태의 무의미한 규칙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안식일은 그들에게 즐거운 날도, 여호와의 성일도, 존귀한 날도 아니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준수를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짐으로
만들어 버렸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불을 켜거나 심지어 촛불을 켜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종교적 지도자
들 중에서도 그들의 마음을 성령에 대하여 강퍅하게 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인식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자들이 많지 않은가? 그들은 그들 자신의 유전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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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Jewooklee님의 댓글
새벽 이슬 여러분, 안녕 하셨습니까?
무거운 죗짐과, 질병의 고통 때문에 얼마나 아푸셨나요?
모든 것 다 십자가 앞에 내려 놓고, 예수님을 만나러 나아
가십시다. 38년된 가련한 중풍 병자를 예수께서 찾아 오
셨던 것처럼, 지금 예수님께서 내 곁을 찾아오셔서 오늘
나의 병든 몸과 영혼의 속절없는 고통중에 울부짖는 간절
한 영혼에 치유와 회복이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목을 매나
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 기도와 간구를 늘 넉넉하게 응답
해 주시는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